한국전과 월남전
1. 한국전쟁에서의 공중우세
-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통한 불변의 교훈은 공중우세가 전쟁승패 의 관건이라는 사실이었다. 공중우세의 획득과 유지가 육, 해, 공군의 작전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선결적 필수조건임을 적절히 보여 주었던 것이다.
- 한국전은 지상군 주도로 수행되었던 전쟁이었으며, 정치적으로 제한받는 가운데 작전을 수행하여야만 했다. 전쟁 초기에 공군은 주로 지, 해군의 지원에 주력하였으며 항공 전략이 적절히 수립되거나 적용되는데 한계점들이 존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엔군은 공중우세를 확보하고 공중정찰, 후방차단, 근접지원작전, 공수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여 북한 지상군의 가속적인 남하속도를 저지하고 지속적인 작전수행을 어렵게 하였다.
- 실제로 전쟁초기인 1950년 8월 초 유엔군은 한반도 전역에서 완전한 제공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유엔군의 공중우세는 지속되었고 이는 인천상륙작전과 반격작전에서도 지, 해군의 자유로운 작전을 보장하였다. 공중우세를 확보한 이후에는 폭격기에 대한 전투기의 엄호임무를 폐지할 수 있었으며, 미 항공모함과 함정들 역시 적 공습의 위협이 제거됨으로써 해안에 더 가까이 접근하여 포격과 공중공격을 수행할 수 있었다.
2. 제트기의 등장과 압박을 위한 항공력 운용
- 한국전쟁에서는 제트기에 의한 공중전이 최초로 수행되었다. 공중전은 주로 압록강 남쪽 적지 상공에서 미 공군의 F-86(Sabre)과 북한측의 최신예기인 MIG-15간에 이루어졌다.
- 미 공군은 공중전에서 15:1의 우세를 보였는데, 이는 제트기에 의한 전투에서 조종사의 우세한 기량이 중요함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또한 유엔군은 각종 전략목표를 공격함으로써 북한에 대하여 정치적·심리적 차원의 압박작전을 진행하였다. 특히 휴전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유리한 입장을 점유하기 위한 압력행사를 위해서 항공력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군사목표 우선순위를 잘못 결정하여 전략적 실패를 야기한 것이다. 결국 월남에서 미국은 전쟁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공격력의 구심점을 상실하였다. 월맹에 대한 폭격 제한구역을 설치한 것 또한 항공력의 손발을 묶어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의 군부와는 달리 정치 지도자들은 확전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작전에 반영하여, 적 군사요충지를 "적 영토내의 성역"으로 설정함으로써 적에게 대응할 여유를 제공하였다. 항공력을 월맹이 회담에 응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외교술의 한 형태로 취급함으로써 전쟁에서승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견지하기 어려웠다.
- 또한 중공군의 개입 및 확전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전쟁의 최종목표를 "전쟁승리"에 두지 않고 "회담성사"에 둔 오류도 있었다. 또한 미국의 지휘구조가 복잡하여 항공력에 대한 지휘·통제가 효율적으로 운용되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었다. 월남 지역은 주월 미군지원사가, 월남 이외의 지역과 월맹, 라오스 및 캄보디아 지역은 태평양 지역 사령부가 각각 지휘통제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월맹 및 라오스 일부 지역의 항공작전권은 7공군 사령부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B-52 폭격기에 대해서 전략공군사령부가 지휘 및 통제권을 가짐으로써 현장 지휘관이 항공력 운용상의 융통성이 결여되었으며, 대상목표에 대한 적시성도 부족하였다. 게다가 전쟁의 당사자인 월남측의 정신력 부족, 국제사회의 미온적 반응, 미국 국내의 격렬해진 반전여론이 형성됨으로써 미국은 더 이상의 전쟁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3. 제한전쟁의 교훈
한국전쟁과 월남전, 두 전쟁은 정치적 관점에 의해 군사작전 수행에 제한을 설정함으로써 군사력이 지향해야할 목표가 불확실해짐에 따라 장기적인 소모전 형태로 진행되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또한 지휘체계가 분산되어 현장지휘관이 시기적절한 작전수행을 하기 어려웠던 상황도 유사하였다. 결국 항공력은 집중되어야할 전략목표를 정확히 설정할 수 없었다.
전략목표에 대한 근원적 파괴가 불가능함에 따라 전쟁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고 대규모 파괴와 희생이 동반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의 반전여론이 형성되었고 국민의 반전여론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결국, 항공작전이 전술적으로는 성공하였지만 전략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는 지상군 지원에 지나치게 몰두하였으며 독자적인 항공전략이 부재하였던 결과였다. 따라서 항공력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이는 장차 전쟁에서도 항공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얻게 되었다.